티스토리 뷰

반응형
셰어(Cher)는 단순한 팝스타가 아닙니다. 그녀는 시대를 초월한 상징, 독창성과 저항의 목소리, 그리고 팝 문화의 여왕으로 기억되는 아이콘입니다. 음악,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젠더 정치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언제나 중심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 스폰서 링크

1.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소녀, 셰어릴린 샤키시안

셰어는 1946년 5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셰릴린 샤키시안(Cherilyn Sarkisian). 유대계 아르메니아 혈통을 지닌 그녀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키가 큰 174cm의 소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고, 어머니는 무명 모델이자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나 그녀가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부모는 이혼했고, 이후 셰어는 어머니와 함께 고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아버지는 알코올에 의존했고, 재혼한 새아버지들 역시 그녀에게 따뜻한 가정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가난과 불안정한 가족환경 속에서 셰어는 종종 고아원에 맡겨지기도 했고, 어머니는 모델과 배우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 스폰서 링크

2. 어린 시절의 불안정함, 그리고 첫 무대

셰어는 일찍부터 아역 연기를 시작했지만 안정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 1961년, 어머니가 은행가와 결혼하면서 가정 형편은 갑자기 나아졌고, 셰어는 조금씩 자신의 길을 찾기 시작한다. 16세에 학교를 자퇴한 그녀는 로스앤젤레스의 연기 학교에 등록하며 연예계 진출을 준비했고, 17세에 셀러브리티들이 드나들던 ‘ALDO’S’ 카페에서 훗날 첫 남편이 되는 소니 보노(Sonny Bono)를 만나게 된다.

3. 소니 & 셰어, 그리고 스타의 탄생

1963년, 셰어는 가수로 정식 데뷔한다. 소니와 함께 '소니 & 셰어'라는 듀오를 결성한 그녀는 1965년 'I Got You Babe'의 대히트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중성적인 외모, 낮고 독특한 콘트랄토 음역대, 강력한 성량과 벨팅 창법은 그녀만의 강한 개성이 되었고, 셰어는 단숨에 1960년대 대중음악의 상징이 된다.

📢 스폰서 링크

4. 방송과 TV, 셰어는 멈추지 않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셰어는 음악뿐 아니라 방송과 드라마까지 무대를 넓혀간다. ‘The Sonny & Cher Comedy Hour’로 TV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이혼 후에도 방송을 함께 이어가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했다. 1975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Cher Show’를 론칭하며 완전히 독립적인 스타로 우뚝 선다. 이 시기부터 그녀는 메두사처럼 굵고 풍성한 펌 헤어를 고수하며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5. 험난했던 두 번째 결혼, 그리고 배우로서의 성장

셰어는 두 번째 남편인 록 뮤지션 그렉 올먼과 결혼하지만, 그가 알코올과 마약에 의존하면서 짧은 결혼 생활로 끝난다. 그녀는 결국 33세에 싱글맘이 되지만, 배우로서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다. 1983년 영화 실크우드에서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했고, 1985년 마스크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는다. 이후 1987년 문스트럭에서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호흡을 맞추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6. 다시 음악의 여왕으로: Believe

1999년, 셰어는 다시 음악계로 돌아온다. Believe는 그녀가 53세에 발표한 곡으로, 전 세계적으로 1천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특히 이 곡은 오토튠 보컬 효과를 팝 음악 최초로 적극 활용한 곡으로, ‘셰어 이펙트(Cher Effect)’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나이와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이 노래는 셰어를 다시 한번 전설로 만들었다.

📢 스폰서 링크

LGBTQ+ 커뮤니티의 아이콘

셰어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 게이 아이콘으로도 유명하다. 그녀의 자녀였던 채스터티 보노는 후에 커밍아웃과 성전환을 거쳐 남성인 채즈 보노로 살고 있으며, 셰어는 이를 적극 지지하고 공개적으로 동성애자 인권 운동에 참여했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많은 LGBTQ+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었다.

딸에서 아들로 성전환한 셰어의 자식

📢 스폰서 링크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