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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간 왕위 다툼으로 인한 백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국왕의 권력은 강화되고  왕실에서는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의상이 더욱 과장된 스타일로 변모합니다. 대체로 평민들 패션은 수수함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다 1350년경부터 복장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재단사가 등장하면서 옷은 점점 몸에 맞춘 맞춤 제작이 보편화되기 시작합니다. 

백년 전쟁 이후 유럽 패션 경향

 

 

여성 의상 중 목선은 아래로 내려갔고 드레스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풍성하고 풍만한 스타일을 강조하게 됩니다. 보통 동화 속 마녀 패션에 자주 등장하는 호프랜드 즉 가운을 걸쳐입기도 하고요.단색의 린넨 소재 의상은 실크 등 고급스러운 질감과 함께 꽃무늬를 비롯하여 기하학적 패턴이 가미된 의복이 등장합니다. 겨울에는 남녀 모두 모피를 안감으로 하고 의복 겉 테두리를 그것으로 감싸 입었습니다.

1350년대 여성 헤어 스타일

의상에 이어 헤어 스타일도 인상적입니다. 여성들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가운데 가르마를 타는 등의 낭만적인 스타일에 베일과 흰색 린넨 소재의 왕관 및 필박스로 멋을 냈습니다.

유행의 중심은 부르고뉴

 

 

그러면서 스타일과 액세서리, 장식 등이 지역마다 개성을 드러내면서 차이점을 드러냈고요. 이러한 유행 트렌드는 부르고뉴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고 무역이 성행하여 벨벳, 실크, 금은 및 자수 등 최고 품질의 소재 등으로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유럽 패션 중심지가 되었고요. 이곳은 훗날 프랑스에 합병됩니다.

 

 

이렇게 유행을 주도한 부르고뉴 지역의 직물은 다른 곳과 달리 밝고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컬러가 특색이었습니다. 이전부터 뾰족한 신발 스타일은 유지되었는데요. 그러한 가운데 남자들은 여행용 부츠를 신었고, 진흙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무와 코르크 패턴을 끈으로 묶어 신는 신발 형태를 신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뾰족한 모양보다 긴 발가락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타로 카드 같은 데 삽화 보면 유난히 발이 긴 양말 혹은 슈즈 같은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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