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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년대 패션 아이콘 이자보우 드 바이에르 공녀 이야기입니다.

 

1370년에 태어나 1435년에 생을 마감한 그녀는 프랑스 군주 샤를 6세의 왕비이자 비텔스바흐가 바이에른 슈테판 3세 공의 딸로 독일식 이름은 엘리자베스 폰 바이에른입니다.

 

 

그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동은 1420 5 21 트로이 조약의 체결로, 프랑스에서 추방될 그녀의 아들 샤를(이후 샤를 7) 대신하여 잉글랜드의 헨리 5세를 프랑스 왕위 계승자로 인정한 것으로 봅니다.

 

 

 

그녀는 1385년 7월 17일 샤를 6세와 결혼하여 20년간 12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의 정신병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샤를 6세는 왕비를 엄청 사랑했지만 정신착란이 온 뒤로는 왕비를 알아보지 못할 뿐더러 그녀를 무척 혐오했다고 합니다. 그의 정신병이 왕비의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발작을 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실제로 왕비는 사치와 방탕함으로 유명했으며 재산을 친정에 빼돌리기 바빴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차치하고 바이에른 공녀는 15세기가 시작될 무렵 서양의 대표적인 패션 리더로 유명했습니다.  남편의 사망 후 아들의 섭정 역할을 하면서 권력 암투에 버티기 위해 바이에른 공녀는 더욱 더 위엄있는 패션에 힘을 썼을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녀가 사치를 일삼고 화려하면서 멋진 의상을 보여주니 패션 리더로 주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아이템은 부르레 머리 장식이었습니다. 아마도 섭정을 하니 왕관을 직접 쓸 수는 없고 그에 못지 않은 위용을 과시하는 아이템을 개발하다 그런 스타일을 쓰게 된 게 아닐까 하는데요. 왕관도 아닌 것이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런 느낌?

하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히스테릭함과 변덕스러움은 정치적 서툼으로 이어졌고 여러가지 이유로 프랑스인과 영국인 모두에게 경멸을 받으며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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