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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개봉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는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입니다. 산업 혁명이 한창 활발하게 진행중이던 시대라 영국에는 각국에서 이민자들이 등장하고, 또한 미국으로 대거 이주한 사람들도 증가해서 신분 계층이 다양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중산층이 대거 등장하던 시기였는데요. 영국의 왕족과 노동자 계층 간의 갈등과 신분적 문화적 차이의 최고 혼동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 속 패션 스타일 보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성들의 의상 스타일도 다소 변화가 오기도 하는데요. 귀족층은 연회에나 외출복으로 허리를 강조한 여왕 개미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화려한 모자와 긴 장갑, 그리고 양산을 손에 쥔 스타일이 보편적인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영화 속 패션 스타일 좀 볼까요?

영화 줄거리부터

마이 페어 레이디 영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음성학 교수라고 해야할지 암튼 상류층 신분의 교수가 발음 연구를 하면서 저급한 영어를 쓰는 이주민 및 하층민을 엄청 무시하는 괴팍한 히긴스 교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길에서 꽃을 파는 순수하지만 경박한 일라이자 역의 오드리 헵번이 사람들에게 막무가내로 억척스럽게 꽃을 팝니다. 히긴스 교수는 일라이자의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적으며 연구에 활용하였던 것 같고요.

그러다가 일라이자가 발음을 고치면 길에서가 아닌 꽃집에서 우아하게 꽃을 팔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히긴스 교수 댁을 찾아갑니다. 마침 후원자도 있고 하여 일라이자는 히긴스 교수 집에서 6개월간 머물면서 발음 교정 및 예절 교육을 받습니다. 히긴스 교수의 목표는 영국 왕실 파티에 초대 받아 일라이자가 완벽한 귀족으로 대접받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히긴스 교수의 말투나 태도는 천박하기 그지없었다는 것은 참고하고요.

스토리보다 패션에 더 눈이 가는 영화

 

 

영화는 뮤지컬 형식인데 줄거리보다 당시 패션 스타일에 눈이 가서, 어떤 이들은 모자 디자인 참고하기 위해서 본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정도로 현란하고 아름다운 모자의 향연이 펼쳐지는 영화이긴 합니다. 그리고 영화 주제가 일라이자의 발음 교정에 있기 때문에 영국식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이 영화 보면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약간 들긴 합니다. 

벨 에포크 스타일을 한 눈에

 

 

아르누보에서 벨에포크 시대가 교차되면서 그 시대 특유의 패션 및 문화 전반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당시 실내 장식 및 식기, 욕실, 벽 색상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습니다. 

 

 

이렇게 현란한 꽃무늬 벽지와 세면대 좀 보세요. 엄청 멋지지 않나요?

오드리 헵번의 찬란한 변신

 

 

오드리 헵번은 길에서 꽃을 팔면서 얼굴에 각종 먼지를 묻히고 단 한번도 목욕을 해본적이 없는 더러운 여인이었는데요. 히긴스 교수 집에서 기거하면서 하얀 피부로 돌아옵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나의 아름다운 숙녀, 라는 뜻도 있지만 페어가 하얗다는 의미도 있으니까 깨끗해진 의미도 들어간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첫 관문은 히긴스의 엄마를 만나 테스트하는 거였습니다. 일라이자의 발음은 완벽하게 교정되었으나 사고는 여전히 길거리 경박한 문화 스타일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절 교육에 힘쓰고 마침내 신분을 위장하고 여왕을 알현하는데, 여왕이 친히 아름답다며 극찬하고 그의 아들과 춤도 추게 합니다. 이날 파티에서 최고의 주인공이 된거죠.

 

 

어쨌든 대성공하고 히긴스 교수와 후원자는 신이나서 집에 돌아옵니다. 그러나 일라이자의 공허함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히긴스 교수는 상류층을 속이기 위해 일라이자를 훈련한 것이지만 일라이자는 눈은 높아지고 교육 수준도 높아져서 꽃집에서 일하는 숙녀조차도 하기 애매해진 상태가 됩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노총각에 괴팍한 히긴스가 자신에게 좀 더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는 것 같고요.  무슨 야속함인지 허무함인지 일라이자는 자신의 터전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의 수준은 너무 높아진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술주정뱅이에 맨날 일라이자한테 돈을 타가던 그녀의 아버지가 거리에 돈을 뿌리며 개과천선한 모습을 마주칩니다. 아버지는 그 교수의 지인이 죽으면서 자신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죽어서 자신이 중산층 도던 관념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고 툴툴거립니다.

나름 철학있는 영화

일라이자의 아버지도 독특한 캐릭터 중 한 명이었는데요. 일라이자가 히긴스 집에서 머물기 시작하자 집에 찾아가 딸을 키운 값을 달라고 요청하거든요. 그래서 교수가 얼마면 되냐고 했더니 5파운드면 된다고 해서 10파운드도 줄 수 있다고 하자, 그건 또 필요하면 찾아오던지 할 거라며 자신은 5파운드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뭔가 철학적인 메시지 같긴 합니다만...

 

 

암튼 그랬던 일라이자의 아버지가 중산층으로 살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가난뱅이뿐인데다 이제 자유롭게 내 시간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합니다. 그러자 일라이자는 그럼 뛰쳐 나오라고 하니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한 번 맛을 봤는데 어찌 이 생활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는 듯한 뉘앙스로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한테 엉기지 말고 니는 이제 니 갈 길 가라며, 자신은 아침에 재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라이자는 어디에도 자신이 있을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히긴스 엄마에게 찾아갑니다.  그 와중에 경마장에서 만났던 돈없는 젊은 청년 프레딕인가가 그녀에게 청혼하면서 매달리고 있었고요. 그리고 히긴스 교수는 비로소 자신이 느낀 그녀에 대한 익숙한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요. 깨닫는 찰나 일라이자가 돌아옵니다. 일단 해피엔딩처럼 보이긴 합니다만.... 영화 주제는 사랑보다는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반영한,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사고를 담은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줄거리보다는 영화 속 스타일에 매료되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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