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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발명, 문화 창조의 시대로 불린 1930년대 혼란스러운 패션 트렌드 엿보기

1930년대 사회적 배경

 

 

1929년의 인플레이션, 실업, 파시즘의 대두, 히틀러의 권력 가담과 무솔리니와의 동맹, 1936년 파리에서 "인민전선"내각의 탄생, 격렬한 데모사건 등이 발생했다. 한편으로 이 시대는 산업과 발명, 그리고 밀도 있는 문화창조의 시대였다. 최초로 휴가라는 개념이 생기고 주중 근로시간이 단축되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게 되었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1920년대의 번영과 낙관주의적 경향은 사라지고 실업자가 늘어나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처로 영화가 각광을 받았으며 Greta Garbo, Marlene Dietrich, Joan Crawford, Fred Astaire, Ginger Rogers, Katharine Heppurn 같은 화려한 영화배우가 대표적인 우상이 되었다. 의류산업에 있어서는 지퍼(Zipper)가 발명되었고 새로운 합성섬유가 생산되어 의류소재가 다양화되었다. 영국에서는 1936년에 에드워드 8세(Edward Ⅷ)가 심슨부인과의 결혼으로 단 1년만에 퇴위하고 동생 요크공이었던 조지 6세(Gorge Ⅵ)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미국은 1890년대 말부터 1930년대까지 근본적으로 농촌사회에서 도시에 중심을 둔 사회로 바뀌어 갔다. 백화점들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기성복 산업은 이제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사업이었다. 생산 라인 기술은 중공업에서 의복 제조업으로 이전되었고, 값싼 의복을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적인 기계류가 고안되었다. 국토를 횡단하는 철도와 늘어가는 여성용 잡지 부수는 나라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패션 정보업체들을 확산시켰다. 복합상점이나 지점들이 미래에 여전히 30년대를 의미하겠지만, 광대한 소매상들의 제국이 성립되었고 소형의 전문상점이 점점 중요해져가고 있었다.

1930년대 문화 및 예술사조

제 1차 세계대전과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인한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인간성의 상실은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예술사조인 초현실주의를 형성하였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이나 미학적 규제, 도덕적 관념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직접적인 사고와 표현방식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표현되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달리(Salvador Dali), 에른스트(Max Ernst), 마그리트(Rene Magritte) 등이 있다.

초현실주의 양식은 패션, 패션광고, 윈도 디스플레이 등에 적용되어 복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물론 초현실주의의 세속성을 부인한 일부 예술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러한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의 초현실주의자들과 밀접한 상호관계를 유지했던 디자이너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는 달리에게서 영감을 받은 서랍 슈트(desk suit:1936)와 찢어진 드레스(tear-dress:1937), 신발모자(shoe-hat:1937) 등으로 오브제의 전위와 착시를 통해 기괴함과 대답함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 1904∼1989)

 

 

달리의 작품세계를 현대 미술사조에 따라 도식적으로 끼워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는 1920년대에 피카소의 지중해적 고전주의에 의존한 입체파적인 그림을 제작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회화 양식에 있어 구성과 소요에 엄격함을 지니게하여 이후 그의 전생애에 걸쳐 이러한 특징을 유지하게 되었다. 1926년부터 입체주의를 포기하고 홀로 전통회화를 무기로 작품 제작에 몰두하였는데 이러한 의존은 그 이후 브루통과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결별 이후에 한결 강해졌다.

1929년에 초현실주의자들과 합류한 달리는 1939년 초현실주의 그룹을 탈퇴할 때까지 많은 회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였다. 1939년 초현실주의 그룹으로부터 추방된 이후 달리 자신이 아방가르트 미술과는 거리를 취하였으며 베르미어, 미켈란젤로, 벨라스케스와 같은 과거 거장들의 전통을 회복하였다.

1930년대 패션경향

 

 

1930년대 패션 경향 중 여성의복은 대공황을 계기로 직장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비활동적이고 우아한 여성적인 것이 중시되었다. 따라서 헐렁하고 직선적이며 낮은 허리선의 보이시 스타일이 사라지고 허리는 제자리로 돌아오고 스커트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몸에 꼭 맞고 어깨는 넓고 네모로 각이 진 전체적으로 홀쭉하고 긴 롱앤드 슬림(long and slim)의 여성적인 실루엣이 나타났다. 따라서 옷감의 바이어스 재단이나 고어 스커트가 유행되었다.

1928년부터 나타난 인체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강조하는 경향은 30년대 초에 등이 노출된 이브닝 드레스라는 하나의 대담하고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 낸다. 등은 거의 허리선까지 잘려나갔다. 이브닝 드레스에는 홀터 네크라인(halter neckline)과 카울 네크라인(cowl neckline)이 주로 사용되었고 Vionnet의 바이어스 재단으로 몸에 부드럽게 늘어지는 모양을 이루었다. 이제 양성적이던 광기의 시대인 가르송느 스타일은 차츰 사라지고 부드러운 니트와 레이스 그리고 리본으로 만들어진 옷에 의해 인체를 부드럽게 드러내 보였다. 이로써 오늘날의 브래지어가 출현하게 된다. 탄력 있는 망사로 된 콜셋은 배를 평평하게 하고 힘을 축소시켰다. 이러한 자연으로의 복귀는 20년대에 풍미했던 경향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증가하는 활동적인 스포츠의 인기와 더불어 적절한 운동복이 변화된 기본적인 평상복 스타일이기보다는 스포츠의 기능적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테니스와 스케이트복은 과거보다 더 짧아져, 무릎 바로 위까지 왔고 최대의 동작을 허용하기 위해 플리츠나 플레어를 넣었다. 골프용 스커트는 특별히 깊은 플리츠를 넣었고 많은 여성들이 '바지'와 방수기능 자켓으로 불리우는 느슨한 남성적인 테일러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승마를 할 때 대부분의 여성들은 걸터앉았고 남성들의 승마복과 거의 같은 것으로 착용했다. 스키휴가는 더 대중화되었고 더 많은 부유층의 연중행사가 되었다. 스키복은 1930년대 동안 다른 어떤 형태의 운동복보다 더 선동적으로 발달했다.

Shiaparelli 디자인 아이디어 몇몇은 그녀의 모자가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양말이거나 거꾸로 된 구두처럼 보인 것이나, 또는 슈트와 드레스에 하트나 입술모양의 단추가 달린 것과 같이 새로운 것을 알리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희안하고 논쟁의 대상이 되는 디자인 아이디어에 대한 그녀의 경향은 30년대 초기동안 착용된 완화된 패션 이후 필요로 하는 재미있는 요소를 가져다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더 넓은 어깨와 근육질의 남성 몸매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찬사를 받았다. 대중매체의 성장하는 힘 특히 라디오와 영화는 영화배우, 운동선수 그리고 이태리의 파시스트와 단호한 얼굴을 한 독일인들에 대한 영웅심이 싹트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대부분 남성들의 의상은 영화배우들에 의해 착용된 의상보다 훨씬 덜 과장되었으나 거리낌없는 모습이었다. 오버코트와 레인코트는 넓은 어깨였으며 몸과 소매가 여유 있게 재단되었으며, 큰 칼라와 리버스가 달렸으며 여성들의 길이와 같이 바로 무릎 아래까지 왔다. 슈트 자켓 역시 각진 어깨와 큰 리버스가 달렸으며, 허리에서 약간 들어갔으나 힙위가 직선적이고 납작하게 재단되어 당시 여성들의 실루엣과 비슷한 형태였다. 바지류는 헐렁하고 여유 있게 플리트된 허리선에서 접혀 올려진 커프스까지 상당히 다양했다. 접어 올린 것은 모든 평상복 바지에 적용되었다.

스튜어디스나 면접용 쪽머리 스타일에 많이 쓰치는 '머리망'으로 긴머리를 깨끗하게 처리해 주는 스타일이 유행했다. 모자 대신 머리 스카프가 점점 유행하게 되었으며 터번과 같이 머리둘레에 묶여졌다. 플리츠된 스커트나 바지와 함께 착용된 남성적인 테일러드 자켓은 많은 여성들의 안전한 기본 품목이 되었다. 1939년경 대부분의 여성들은 바로 무릎 아래 길이의 실용적인 스커트를 입었고, 패션은 필요한 경우 자신의 국방 의용군을 닮아 가는 것 같았다. 극단적인 여성미는 Dior의 유명한 '뉴룩'과 함께 성공적으로 재생되었을 때 전후까지는 미루어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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