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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는 아트와 누보가 결합된 새로운 예술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아르누보는 1890년에서 1910년 사이 유럽과 미국, 남미를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유행한 일종의 예술 양식입니다. 아르누보는 영국과 미국에서 불린 호칭이며 독일에서는 유겐트 양식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기마르 양식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양식으로 불렸습니다. 

 

 

 


아르누보 스타일의 정리

 

19세기 아카데미 예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성된 아르누보 양식은 자연, 특히 꽃이나 식물 덩굴 등에서 따온 장식적인 곡선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르누보에 대한 양식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해도 덩굴 식물이나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으로 장식된 철제 난간, 그리고 섬세한 꽃무늬의 반복적인 패턴, 긴머리를 한 여인 이미지는 모두 아르누보 스타일의 단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르누보  이름의 발상

 

아르누보라는 이름의 발상은 독일 태생의 지크리트 빙이 1895년 프랑스 파리에서 메종 드 아르누보란 화랑을 개소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1870년대부터 주로 일본 미술품 판매를 하였던 빙은 새로 개소한 화랑에서 세계 각국의 신진 작가들의 작품 전시 및 유리 공예품, 보석 등 각국의 디자이너 제품을 전시하였습니다.

 

 

빙의 화랑이 유명해진 계기는 1902년 그가 건축잡지의 인터뷰 중에 화랑 이름에 관해서 언급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젊은 감각의 예술가들을 모임 장소 차원에서 지은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을 했을 뿐인데 이것이 당대 신진 예술가들을 움직이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나라마다 다르게 불린 아르누보의 명칭

 

아르누보는 나라마다 불린 명칭이 달랐습니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영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모던 스타일이라고 하고 독일에서는 유겐트 스타일,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시온슈틸,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데르니스타로 불렸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영국의 백화점 이름을 따서 리버티 양식이라고 하였는데요. 정확한 이름은 스틸레 리베르 티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르누보의 본거지는 영국

 

19세기에는 대부분의 미술 트렌드를 이끈 나라가 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사실 아르누보의 본거지는 영국이었습니다. 영국 미술 비평가 존 러스킨은 그의 저서인 베니스의 돌에서 모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은 의도했든 우연이든 자연의 형태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러스킨의 제자였던 디자이너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윌리엄 모리스가 주도한 미술공예운동에 의해 더욱 활성화됩니다.


 

대중문화에 기여한 러스킨과 모리스

 

그렇게 러스킨과 모리스의 추종자들로 구성된 미술공예운동의 정신은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그리고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격차를 줄이고 삶속의 미술, 미술 속의 삶을 이루려고 했다는데요. 이러한 예술 풍조는 유럽 대륙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아르누보 미술가들은 수공예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기계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새 시대에 맞는 양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아르누보의 전성기는 1895년부터 약 10여년간이었습니다. 1910년경부터 건축 및 공예계에서 미적 아름다움보다는 기능과 실용을 중시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아르누보의 인기는 시들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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