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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인본주의 문화는 인간 중심의 패션 모티브를 고대에서 찾았습니다. 로마의 튜닉이나 팔라 스타일처럼 무늬가 없는 형태는 패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패턴에 빈부의 차이에 따라 금과 보석으로 수를 놓고 장식하면서 멋을 추구한 특징이 두드러졌습니다.

동화속 요정 스타일을 볼 수 있는 15세기 중반 패션 스타일

 

 

1460년대는 포탑이 절정을 이루었는데요. 즉 머리에 뿔이 난 스타일이 극대화를 이루면서 젊고 아름다울수록 그들의 미적 과시는 과장된 뿔 모양의 머리 장식으로 결정될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보면 동화속에 나타난 요정 스타일이 주로 이런 헤닌을 쓰고 나오죠.

임신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고안한 파팅게일

 

 

 

부르고뉴 공국이 아직 프랑스에 예속되기 전 패션의 중심지는 이곳과 프랑스로 경합을 벌인 가운데 1470년대부터는 스페인의 독특한 패션이 이탈리아에서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이 무렵에는 여성들의 꼬깔 헤어 스타일도 막을 내리고 있었고요. 그중에서 1460년대 포르투갈의 왕비 후아나 데아비스는 남편 부재 중 외도하여 임신을 하였는데요. 부풀어 오르는 배를 감추기 위해 치마 속에 훌라후프 같은 것을 끼고 다니게 됩니다. 여왕은 1468년 쌍둥이를 낳았고 같은 해 이혼합니다. 그녀의 사생활과는 별개로 그녀의 의상 스타일은 유럽 전역에 유행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1460년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은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의 두 번째 부인인 잔드 라발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녀에 관한 정보는 많이 알려진 바 없고 패셔너블했다기 보다는 문화 예술 전반에 관한 예술적 후원을 많이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재위 기간도 3년 밖에 안되었고요.

또한, 당시 속옷으로 염색되지 않은 린넨 소재의 케미즈를 입었다면 스페인 의상은 일종의 사야 혹은 현대식 셔츠처럼 분리가 되거나 한 벌 스타일이어도 민소매로 걸치기 쉬운 특징이 있었습니다.스페인은 금으로 짠 비단 벨벳을 생산했기에 이러한 소재의 의상이 상류층 사회에서 유행했고요. 앞서 언급한 후아나 왕비가 유행시킨 스커트에 후프가 달린 파팅게일 혹은 베르두가도는 풍성한 실루엣을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스페인 스타일 의상은 빠르게 이탈리아로 퍼지면서 유럽 전역에 유행하게 됩니다.

소매 폭 때문에 파산 선고하는 일이 생길 정도

15세기 중반 하층민들은 옷이라고 할 것도 없이 초라했지만 상류층으로 갈수록 호화로운 직물 및 코르셋 등으로 옷을 겹겹이 입고 장식으로 멋을 잔뜩 내었습니다. 넓은 소매가 유행하였는데 이 소매 때문에 파산한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사치의 척도가 옷의 소매 폭에 있던 모양입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3국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묘한 경쟁 속에서 이탈리아의 호플란드 스타일과 깊게 파인 V네크라인이 유행하였고 하이웨스트에 상당히 긴 치마 길이를 자랑했습니다. 부유층에 한해서는 소매를 탈부착식으로 사용하거나 금실 등의 자수로 장식한 의상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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